마카오? 뭄바이? K-팝의 다음 목적지

2025. 11. 08

마카오에서 개최된 최초의 K-팝 시상식부터, 하이브 인디아의 첫 프로젝트 정국 전시 소식까지. K-팝이 가지 못할 곳은 없다.

인도이 뭄바이 개최 소식을 알린 정국의 솔로 전시 Courtesy of BigHit Music

“WHERE INDIAN VOICES BECOME GLOBAL STORIES”.

11월 4일, 하이브 인디아(HYBE INDIA) ‘X’ 계정에 첫 게시물이 올라왔다. 하이브가 지난 9월 인도 법인 설립을 기사화한 지 약 한 달 반만의 일이다. 이어서 뭄바이(Mumbai)에서 정국의 전시 “GOLDEN: THE MOMENTS”가 개최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국의 솔로 활동을 돌아보며 2024년 서울에서 진행했던 전시로, 지금 하이브의 시작이 된 BTS를 내세운 하이브 인디아의 사실상 첫 번째 프로젝트는 12월 12일부터 2026년 1월 11일까지 열릴 전망이다. 

‘K-팝’과 ‘글로벌’은 어느덧 나란히 놓여도 이질감 없는 단어가 됐다. '아시아 투어', '월드 투어' 같은 표현도 익숙해졌다. 방콕, LA 등 먼 대도시에서도 대형 K-팝 시상식이 열리고, 한국의 국영방송인 KBS의 대표적인 음악방송 ‘뮤직뱅크’는 멕시코시티(2023년), 스페인 마드리드(2024년)에서 특별 프로그램을 펼치기도 했다. 사실상 K-팝이 이제 가지 못할 곳은 없어 보이는 가운데, K- 팝 산업의 핵심인 공연 업계에서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실질적인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최근 가장 눈에 띄는 행선지는 마카오(Macao)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거리. 그러나 마카오는 그동안 일본 대도시나 홍콩, 타이베이 같은 비슷한 거리의 동북아시아 국가 중에서 K-팝 아티스트의 콘서트가 상대적으로 덜 개최되는 곳 중 하나였다. 콘서트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장 베뉴가 갤럭시 아레나와 베네시안 아레나(전 코타이 아레나)로 한정적이고, 공연장 규모도 둘 다 1만 5천석 정도로 대규모 공연을 펼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문을 연 ‘마카오 아웃도어 퍼포먼스 베뉴(Macao Outdoor Performance Venue)’에 이목이 집중된 이유다. 마카오 특별행정부 정부가 직접 설립한 공연장은 최대 5만 명까지 수용 가능한 초대형 베뉴다. 12월 개장 이후 알렌 워커(Allen Walker),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등 극소수의 초대형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개최됐거나 개최 예정인 가운데 9월 마카오에서 최대 규모의 K-팝 시상식이 열렸다. 관객 규모 3만 명, 참가팀 15팀,  마카오 사상 최대 규모다.

2024년 12월, 마카오 특별행정부 정부 주도 하에 출범한 마카오 아웃도어 퍼포먼스 베뉴

“아시아에서 대규모 K-팝 시상식을 개최할 때 사실 대안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대규모 인원을 이동해야 하는 만큼 또 너무 먼 곳은 안 돼죠. 그랬을 때 저희가 찾았던 대안은 마카오, 홍콩, 대만이었어요. 다만 대만 가오슝 체육관은 돔이지만 야외로 지붕이 열려있는 돔 형태이고 생각했던 일정에 국가 행사가 있었습니다. 홍콩에 새롭게 생긴 카이탁 스타디움은 결국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작년 오사카 쿄세라돔에서 진행했던 시상식과 비주얼적으로 비슷한 그림이 나올 것 같았고요. 하지만 마카오 아웃도어 퍼포먼스 베뉴는 공연장 뒤쪽에 도시의 상징적인 풍경들이 보이죠. 지역의 색채를 드러날 수 있다는 것, K-팝 아티스트들의 시상식이 해외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야외라는 위험부담을 안고 이곳을 택하게 됐습니다. ” 9월 20일 스트레이 키즈, 아이브, 엔하이픈를 포함한 총 15개 팀, 100여 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더 팩트 뮤직 어워드( 2025 TMA)’를 주관한 공연기획사 더스퀘어이엔엠 유승재 대표의 말이다. 단 한번도 K-팝 가수에게 땅을 내준 적이 없던 야외 부지에 대규모 공연을 기획하는 것은 그에게도 모험이었다.

마카오의 상징, 베네시안 리조트 등이 무대 뒷편에서 펼쳐지며 도시의 색채를 명확하게 전했던 시상식 '2025 TMA'

“마카오는 홍콩과 완전히 달라요. 마카오는 정치적 색채도 중국과 같죠. 공연 프로모터들이 홍콩이나 대만을 생각하며 들어온다면 ‘필패’한다고 봅니다.”  그렇다. K-팝이 맘껏 뻗어가지 못하는 땅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2016년 시작된 ‘한한령(限韓令:China's ban on Korean culture)’이 2021년 엔터테인먼트 업계까지 본격 확산된 이후 사인회  같은 팬 이벤트 같이 비교적 소규모 행사만 열릴 뿐, 중국에서는 K-팝 아티스트의 공연은 사실상 개최되지 않는 상황. 올해 10월 중국 하이난에서 개최가 논의됐던 한국의 유서깊은 K-팝 공연 드림콘서트도 결국 중국 정부의 허가가 나지 않아 최근 무기한 연기된 바 있다. 

“이처럼 전례 없는 행사이다 보니 마카오 정부  입장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고 공연이 진행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소방 부서와 경찰 부서, 행안부를 비롯한 12개 유관 부서와 거의 매일 같이 공문을 주고 받았습니다. 해외 공연의 경쟁력은 결국 제작에서 온다고 보는데, 저희와 함께한 로컬 프로덕션의 도움도 많이 받았죠. 사실 북미를 거점으로 하는 공연 기획사 라이브 네이션이나 AEG의 경우 직접 공연장을 소유하거나, 관련 회사가 임차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권은 베뉴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소유하죠. 한국 올림픽 공원 공연장들도 국가 소유잖아요? 그런데 마카오의 공연장들은 카지노 그룹 소유였죠. 그런 면에서도 ‘마카오 아웃도어 퍼포먼스 베뉴’가 갖는 상징성은 큽니다.”  

‘마카오 아웃도어 퍼포먼스 베뉴’는 11월 8일 ‘워터밤 마카오’ 개최를 앞두고 있다. 중화권 아티스트들과 함께 에이티즈, 2NE1, 비비, 박재범, 전소미, GOT7 출신인 마크 투안, 우기, 나우즈, 현아, 스테이씨 등이 무대에 오른다. 시상식과 페스티벌 등 K-팝 합동 공연이 새로운 지역을 끝없이 모색하는 이유에는 ‘티켓 판매’와 모객을 비롯한 수익성 문제도 있다. 일본은 근접성이 높고 기반 시설도 좋지만 공연이 많아지며 티켓 판매가 예전 같지 않고, 이런 현상은 태국, 인도네시아 등 대도시도 마찬가지다. 한 대형 소속사 관계자 또한 “그동안 아시아 투어 지역으로 당연하게 고려됐던 도시들의 K-팝 콘서트 매출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분위기가 내부적으로도 형성되고 있어요. 워낙 많은 공연과 페스티벌이 개최되기도 했고, 많은 현지인들에게 K-팝 콘서트 티켓 가격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니까요.”라는 고민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카오는 대규모 K-팝 공연의 다음 데스티네이션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유승재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워터밤 마카오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

"직접 경험 해보기 전에는 90%,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마카오를 경험해보고  난 지금은 그 생각이 50:50 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한 베뉴인 만큼 화장실을 비롯해 공연에 필요한 설비 수준은 좋았지만 예상치 못한 요소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인터넷입니다. 국영 인터넷 회사가 하나이다 보니 공연을 글로벌 스트리밍 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모바일 티켓 확인도 와이파이가 되어야 원활한 상황이었거든요. 수많은 인터넷 회선을 깔고 송신탑을 설치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경험을 통해 내재화한 것들이 많기에 다음 경험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마카오에서의 대규모 K-팝 공연 성공은 사실 그 자체 성공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중국 정부에도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연을 해도 문제가 없고, 기준이 이렇게 높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추후 중국 시장의 문을 여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되겠죠. 마카오 특별 정부 자체도 최근 카지노 산업의 자리를 대체할 문화산업에 대한 욕구가 높기도 하고요.” ‘2025 TMA’의 티켓 구매자에서 중국 관객의 비율은 75~80% 정도를 차지했다. 대부분이 중국의 남쪽인 광동 지방에서 고속 열차와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더스퀘어이엔엠은 최근 케플러(Kep1er)의 투어에 이어 제로베이스원(ZEROBASEONE)의 팬 사인회 투어를 준비 중이다. 두 팀 모두 중국인 멤버가 있는 팀이다. 그렇다면 공연 프로모터로서 그가 바라보는 또다른 가능성의 땅은 어디일까? 공연 산업은 경제 규모와도 연결되어 있지만, 스포츠 산업과도 연결되어 있어요. 아레나, 돔이 공연장으로만 쓰이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 면에서 빠르게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볼 수 밖에 없고 베트남, 그리고 좀 더 확장해서 본다면 인도도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K-팝 공연을 위해 여러 국가 출장을 많이 다니는데, 가는 곳마다 인도에서 온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게  보이거든요. 이런 흐름은 K-팝 산업과도 연결될 수 밖에 없죠. 아직은 조금씩 교류하는 상황이지만,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도 인도 시장을 눈여겨 보기 시작하는 지금 저희 회사가 개척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인도는 인구 수 기준 세계 최대 국가다. 인도 상공회의소의 발표에 따르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사용자 수만 1억 8500만명에 달한다. 이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이 시장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이브 관계자 또한 하이브 인디아의 설립 배경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하이브 인디아 설립은 K-팝 제작 시스템을 현지에 접목해 세계 최고 수준의 현지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춘 하이브의 ‘멀티 홈, 멀티 장르(Multi-home, Multi-genre) 전략의 일부”로 자연스러운 수순임을 전했다. 하이브 인디아에 앞서 법인을 설립한 하이브 라틴 아메리카를 통해 탄생한 보이 그룹 ‘산토스 브라보스(Santos Bravos)’는 얼마전인 10월 22일 데뷔 콘서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처럼 아티스트 발굴과 육성, 음반 제작, 매니지먼트, 마케팅, 공연 기획 등 음악 산업 전반에 걸친 하이브의 역량을 기반으로 토대로, 현지와 글로벌 시장을 연결한 아티스트를 선보일 전략은 인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예정이다. 인도의 평균 연령은 28세.  25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40%를 차지하며, 경제 성장도 빠르다. K-팝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소비자층이 넓어질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하이브(HYBE)는 하이브 인도 법인 설립을 지난 9월 알렸다

정국의 솔로 여정을 돌아보는 전시 오픈을 앞둔 가운데, 11월 1일 뭄바이에서 ‘케이 타운 3.0(K-Town 3.0)’ 공연이 개최됐다. 2024년 1월 처음으로 열렸던 1회 행사에는 인도 출신인 스리야 렌카가 소속된 걸그룹 '블랙스완(BLACKSWAN)' 을 포함한 3팀의  아티스트가 무대에 올랐지만 이번 3회차 공연에는 슈퍼주니어 D&E, 태민 등 총 다섯 팀이 출격하며 빠르게 현지 브랜딩에 성공하고 있다. K- 팝은 우리를 전세계 어디까지 데려다 줄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지 않은 길을 기꺼이 가려고 하는 이들의 행보를 응원하며 지켜보는 것일지도 모른다.